ARTIST

Flat Scenery 

May 25 - Jun 30, 2023

Introduction


서인 갤러리는 2023년 5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김보민의 개인전 《납작한 풍경》을 개최한다. 

《납작한 풍경》은 김보민이 제공하는 도심 속의 정서적 휴식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최근 들어 조명하고 있는 '산책 풍경'의 연작으로 구성되었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 세줄 요약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짧은 소비 문화는 무엇이든지 15초 안에 대상을 판단하고 스쳐 지나가도록 만든다. 이 시간 안에 재미와 흥미를 압축해서 느끼는 것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물리적 휴식 시간에도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느라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반면에 밖으로 나가서 천천히 즐기는 산책은 이와는 정반대의 삶이다. 


전시에서 새로이 공개되는 19점의 신작은 작가가 직접 거닐던 풍경 이미지들을 채집하여 가장 단순하게 구성한 것이다. 3차원의 입체적인 풍경은 2차원의 평면에서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여러 장으로 겹쳐서 나타난다. 이 레이어는 작가가 눌러 담은 무수히 많은 시간과 의미의 풍경 조각들이다. 오래된 벽돌 건물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전선, 새파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첨탑, 지나치게 가까운 건물 간격 때문에 마치 딱 붙어있는 착시 효과, 그로 인해 비스듬히 지는 그림자, 지극히 구상적인 이 풍경들은 잘 정돈된 선과 면으로 변모하여 화면 위에 그려진다.


목적 없이 느릿하게 걷는 시간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7년간 반려견 2마리와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했던 일과는 작가로서 하여금 일상에서 오는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했고, 스스로에게 오롯이 집중하게 하는 루틴이 되었다. 늘 보는 거리의 모습은 때때로 동반자에 따라, 함께하는 시간에 따라, 바라보는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보인다. 아주 오랫동안 익숙하게 마주했던 풍경은 이러한 변동 요소에 따라 낯설게 느껴진다.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그 속의 다양한 색과 모양의 도형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도형들을 감상자가 자신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공간과 형태로 인식할 때 한 이미지 안에서 두 개의 잔상으로 보인다. 이는 Shape(2차원)과 Form(3차원)이 더해져서 낯설게 느껴지는 것으로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크리스티안 폰 에렌펠스(Christian Von Ehrenfels)가 정의한 게슈탈트 심리학(형태심리학)이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개별로 겪는 사건들은 한가지 감각이 아니라 모든 감각 영역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우리는 부분이 아니라 익숙한 형태로 몰린 전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납작한 풍경》에서 감상자는 각 화면마다 현재 관심을 두고 초점을 맞추는 부분을 전경으로, 관심 밖에 있는 것을 배경으로 인지하게 된다. 


김보민의 작품은 설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전시장에서는 감상자의 전시 경험을 확장하는 색다른 형태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허공에 쓰는 말>은 실제 감상자가 보고 싶은 풍경의 모습대로 방향을 자유로이 조작해볼 수 있는 지름 50센치의 원형의 캔버스이다. 관람자는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직접 작품 방향을 돌려 봄으로 풍경 감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또, 가운데 빈 부분을 통해서 뒤편이 보이는 <감정 조각>은 퍼즐과도 같은 모양이다. 높이 70cm와 너비 60cm, 두께 10cm의 독특한 모습의 작품은 좌대 위에 대각선으로 놓여져 있는데, 감정의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연상된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루는 가정들이 크기, 모양, 색이 다 다르며 영원히 지속되는 감정이 아닌 순간을 채우고 사라지고 새로운 감정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감정처럼 어떤 방향으로 놓여져도 좋은, 관람자가 느끼는 대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 작가의 시선으로 본 거리의 모습은 감상자 개인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이를 확인하는 근거로 작품의 제목이 있다. 제목은 작가가 제공하는 풍경 이해의 단서로서 그 근원을 유추하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를테면, 갤러리 전면에서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갈 용기>는 오른쪽을 바라보는 창이 있는 큰 건물이 화면에 가득 담겨서 양옆 모서리 다음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을 용감하게 이겨내는 장면이 떠오른다. 또, 전시의 대표작<Bokeh>은 사진에서 빛이 아웃포커싱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백색의 원형으로 묘사된 보케는 피사체를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서의 보조 역할이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그 존재 자체로 빛을 내뿜는다. 작고 사소해서 쉽게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들도 <Bokeh>처럼 어딘가에선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기존 작업에 등장했던 캔버스 속의 인물과 오브제들의 존재는 이번 전시장에서 찾을 수 없다. 전시장을 방문하는 감상자들과 그들의 물건이 캔버스 밖으로 꺼내져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기하학적 추상 언어로 치환된 풍경을 산책하면서 내가 나가 아닌 '타자'가 되어본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받을 수 있다. 


이렇듯, 김보민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가장 다루기 어려운 비가시적인 것들을 가시화하여 평면 위에 옮겨놓는다. 풍경 속에서 사색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 감정들과 그것들을 되돌아보는 기억은 가장 단순하고 깔끔한 붓 터치로 표현된다. 그가 재료로 다루는 것들은 진지하면서 깊이 생각할만한 주제이나, 감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화면은 오히려 그 무거움보다 컬러에서 느껴지는 상쾌함으로 주위가 환기된다. 《납작한 풍경》은 복잡한 도시 풍경에서 조용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작가에게는 과거에 있었던 산책 풍경이나, 현재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그곳을 상상 속에서 거닐 미래로 느껴지게 한다.

Installation  Views


Artworks